‘마들’과 ‘애오개’.
둘 다 서울의 지하철역 이름입니다. 정말 그런지는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순우리말 이름이랍니다. 순우리말로 된 지명 상당수가 그렇듯이 이 이름들도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마들 : ① 예전에 그곳에 역참 기지가 있어 말들을 들판에 놓아 길렀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 ② 이 일대가 삼밭이어서 붙여졌다는 설.
애오개 : ① 만리현과 대현 두 큰 고개 중간에 있는 작은 고개이므로 ‘애고개’, 그것이 ‘애오개’로 변했다는 설, ② 옛날 도성에서 아이가 죽으면 이 고개를 지나서 묻게 하여 붙여졌다는 설, ③ 풍수지리설에 따라 아기를 달래는 고개라는 뜻으로 붙여졌다는 설.
이 역들의 로마자 표기는 ‘Madeul’과 ‘Aeogae’, 일본어 표기는 ‘マドゥル’와 ‘エオゲ’입니다.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합니다.
중국어 표기는 ‘马得(馬得)’와 ‘儿岭(兒嶺)’입니다. 구글 번역의 도움을 받아보니, 내 귀에는 ‘마드어’와 ‘알링’ 정도로 들립니다. 전자는 그래도 우리말과 비슷한 듯한데, 후자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여러 해 전에 서울시에서 ‘지하철 역명 외국어 표기 표준화 기준’을 마련한 적이 있더군요. 공문에는“……실질적으로 외국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관련기관(부서)에서는 표준 표기로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통일성이죠. 아마도 이것을 심의한 사람들이 한자는 뜻글자라는 것을 너무 의식한 것 같습니다. ‘마들’은 뜻이 모호하니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애오개’는 ‘아이+고개’라는 뜻이 분명하니 뜻을 살려 적고. 이런 식이라면 과연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이것은 뜻을 표시한 것일까, 아니면 소리를 표시한 것일까? 길을 물어볼 때, 한국 사람들이 알아들을까?’ 오히려 더 불편만 끼치지 않을까요?
위 표는 십여 년 전에 서울메트로에서 순우리말로 된 역이름이라고 발표한 것들입니다. 몇몇은 과연 이것을 순우리말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합니다만, 아무튼 그것의 중국어 표기 기준을 구분하여 적어보았습니다. 발표한 사람의 의중을 잘 알 수 없어서, 소리가 비슷하면 일단 음을 표기했다고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기준의 통일성이 느껴집니까? 이 정도라면 ‘제멋대로’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크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자어로 된 역명은 그대로 중국어 간체로 표기할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순우리말로 된 역 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번역하여 적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소리에 충실하게 적는 것이 맞습니다. 새절[赛折]역처럼 말입니다. 그래야 중국인 여행객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지하철역 찾느라 덜 고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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