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른 정보는 없이 ‘양재대로 1716’이라는 주소만 가지고 목적지를 찾아간다고 가정해 봅니다.
‘양재대로면 양재동?’
지하철을 타고 갈까요? 양재역에서 내리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온통 ‘강남대로’ 또는 ‘남부순환로’뿐입니다.
휴…… 물어물어 염곡사거리까지 가니까, 그제야 ‘양재대로’라는 명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당황합니다. 근처에 있는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주소를 보니 ‘양재대로 242’. 1716까지는 약 15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아……
알고 보니 고덕동, 여기서 너무나도 먼 곳입니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사가정역에서 출발했다면 정말 최악입니다. 버스로는 용마터널을 지나 한 정류장이면 갈 수 있는 곳을 ‘양재대로’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렇게 돌아 돌아 왔다니…… 무슨 구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사람의 잘못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야 이런 일은 잘 생기지 않을 테지만, 도로명 주소의 불합리함을 극대화해 보았습니다.
지번 주소는 일제 강점기에 식민 통치의 기반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라 합니다. 이것도 일제였군요. 도시가 커짐에 따라 지번을 부여하는 것이 불규칙해져서, 이것을 가지고 행선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여년 간 우여곡절 끝에 2014년부터 도로명 주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아무런 기기의 도움 없이 도로명 주소만으로 목적지를 찾는 것이 과연 늘 편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필요에 따라 주소 맨 끝에 괄호를 열고, 법정동과 아파트 명칭을 표기할 수도 있도록 한 것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이왕에 시행하는 도로명 주소의 취지를 살리면서 그 위치까지 쉽게 가늠할 수 있게 하려면, 주소에 정식으로 법정동 명칭을 넣는 것이 맞습니다. 구(區) 이름이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구의 규모도 만만치 않죠. 강동구 안에서만 해도 양재대로의 길이는 4km가 넘으니까요.
‘서울특별시 강동구 양재대로 1716, ○○동○○○호’
어느 날 뜬금없이 기나긴 양재대로의 맨 끝에 있게 된 아파트의 도로명 주소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위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니,
‘서울특별시 강동구 양재대로 1716 (고덕동, ○○아파트), ○○동○○○호’.
이렇게 써도 된답니다. 괄호까지 동원한 것이 궁색하기까지 합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동 양재대로 1716, ○○동○○○호’
훨씬 깔끔합니다. '아, 고덕동에 있는 아파트구나!'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표기 방식이 혼재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정확하고 간편하게 쓸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 아닐까요? 아쉽게도 나랏일 하시는 분들 중에는 진득하게 따져보아야 할 일과 빨리 바꾸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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