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를 좀 넓혀서 보면, 세상은 돌고 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곗바늘이 돌죠, 사계절도 순환합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드넓은 우주도 무엇인가를 축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극소의 세계에서도 전자가 원자의 주변을 돌지요. 그것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빠른 속도로 말입니다. 사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속에 양분이나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피도 회전합니다. 좌심실에서 출발하여 온몸을 돌고 우심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채 1분도 안걸린다고 하네요.
사람들의 일도 자연의 기본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마치 회전하듯이 반복하는 것들을 일상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죠.
제가 송파구에 살다 보니, 이번에도 송파구청에서 근무하시는 공무원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처럼 까다로운 주민을 둔 박복함에 송구할 따름입니다.
왕벚꽃이 한창이어서 봄 향기 가득한 성내천을 산책하다가, 참으로 놀라운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생태하천길 ‘송파수변올레길’을 만들겠습니다.”
제가 놀란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알아보니 송파구 관내에 있는 하천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송파워터웨이’를 만들었다고 커다랗게 선전하던 때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산책로를 만들다니요?
둘째, 서울에서 제주도 사투리인 ‘올레길’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사실 저에게는 ‘송파워터웨이’ 때문에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가, 별 소득없이 끝났던 기억이 있습니다.(말글 꼬투리의 ‘운파허터헤이’ 참조) 마음의 상처만 깊었던 경험 때문에, 이번엔 그러려니 하며 그냥 넘어갈까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우리 고장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한마디를 아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민원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송파수변올레길"의 코스를 보니 10여년 전에 조성하였던 “송파워터웨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의 길을 보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길을 폐기하고 새로운 길을 조성하는 것입니까? 만약에 보완하는 것이라면, ‘민선7기’의 핵심 공약으로 새로 조성한다는 신문기사는 거짓일 것입니다. 철회해야 합니다. 만약 새로운 길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이전의 "송파워터웨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미 있는 것을 폐기하고 비슷한 형태로 다시 만든다면, 이번에 200억이나 되는 예산을 투입한다던데 소중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 생각됩니다.
2. 명칭의 문제입니다. “송파워터웨이”도 참 문제가 많은 이름이었습니다. 워터웨이(waterway)는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나 운하를 의미하는 말이죠. 강가나 시냇가의 산책길을 일컫기에는 부적당한 말이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영어로 되어 주민들에게 크게 공감되지도 않았고, 외국인들에게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인가 “송파워터웨이” 간판들은 언젠가 슬그머니 없어졌죠. 이번엔 “올레길”입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사투리입니다. 우리 지역 사투리라면야 정감 있게 쓸 수 있겠지만, 송파구와는 거리가 먼 제주도의 사투리를 굳이 가져다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레길”도 표준말은 아니지만, 이미 “서울둘레길”이라고 쓰고 있으니, 차라리 “송파수변둘레길”이 낫겠습니다.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내친김에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구청에서 각종 포스터나 플래카드를 내걸 때, 국어 전문가의 검토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살펴보시고, 기본적인 국어 문법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일반 시민인 제가 보기에도 너무 많은 오류가 발견됩니다. 주민들이 읽고 특히 어린 학생들이 읽습니다. 올바른 언어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며칠 후에 읽을 수 있었던 담당자의 답변은 제가 예상한 그대로였습니다.
핵심은 교묘히 피해가면서, 그저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 심지어 어떤 문구는 “송파허터헤이” 때에 보았던 느낌 그대로입니다. ‘회전’이고 ‘순환’입니다.
(1) 송파수변올레길은 송파구의 외곽을 둘러 싸고 흐르는 주요 하천, 성내천과 장지천, 탄천, 한강을 하나로 잇는 총 21.2km의 순환형 산책로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주민을 위한 힐링공간을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미세먼지 저감 등 환경문제도 개선해 가면서 누구나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올레길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2) 말씀해 주신 송파워터웨이 사업은 과거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되어 송파수변올레길의 일부 구간에서 잠시 추진되었으나 지금과 같이 코스를 조성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추진을 하지 못했습니다. 올레길이라는 명칭은 ‘좁은 골목’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으로, 생태경관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라는 뜻으로 보편화되어 있어 차용하였습니다만 명칭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다양하므로 향후 다각도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3) 아울러, 현수막 홍보 문구의 맞춤법에 대한 문제는 현수막 제작시 홍보 효과 극대화를 위해 디자인 위주로 제작을 하다 보니 국어 맞춤법과 다소 불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하는데 앞으로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4) 앞으로도 우리 구정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리며, 이 건과 관련하여 더 궁금하신 사항은 기획예산과(담당:○○○ ☎02-2147-2430)로 문의하여 주시면 성심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에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저는 송파수변올레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는데도, 담당자는 필요 이상으로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송파워터웨이’ 때에도 그랬습니다. 아마 공무원들이 공문을 작성할 때나 민원에 답할 때, 상투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는가 봅니다.
(2) ‘올레길’이라는 명칭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그동안 분분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수렴하여 새로운 이름을 짓겠다고 해야 합니다. 다각도로 검토하겠다는 말이 결국 바꾸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3) 현수막의 표현이 맞춤법에 어긋나는 이유를 홍보 효과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홍보를 위해서는 어문 규정에 맞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인지, 규정을 지키면 홍보 효과를 보긴는 어렵다는 이야기인지,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규정을 잘 지키겠다고 해야 올바른 대답이겠죠.
이 플래카드는 몇 년째 저 위치에서 빛 바랜 모습으로 낡아가고 있습니다.
“목줄 착용과 배변봉투를 준비하여”를 “목줄을 착용하고 배변봉투를 준비하여”로 바꾸어 쓰면, 과연 홍보 효과가 떨어질까요?
(4) 문의하시면 성심껏 답변하겠다는 말, 진심일까요? ‘송파워터웨이’ 때에, 개선하겠다는 말 없이 변명만 계속하여서 민원을 세 번 넣었더니, 담당자에게서 자꾸 민원을 넣으면 홈페이지에서 민원을 내리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스토커 취급을 받은 것이죠. 그런 씁쓸한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여기서 멈추기로 하였습니다.
---(덧붙임)---
제 의견 (2)를 정정합니다. 어찌 된 일인지 명칭이 '송파둘레길'로 변경되었습니다. 물론 소문없이 슬쩍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이만해도 큰 발전입니다. 과감한 결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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