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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 꼬투리

다칸테? 달칸테!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 할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 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제 남녀 사이에 대해 뭘 좀 알 것 같은 점순이는 숙맥인 ''를 답답해 하고, 그런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닭쌈으로 표현합니다.

풋풋한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을, 강원도 내륙 지방의 순박한 말투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연금술에 가깝습니다.

30여년 전에 신남역 - 지금은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니, 이 지역 사람들의 소설가 김유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 근처에 있는, 작가의 고향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겠습니다만, 그때의 소박한 마을 풍경, 훈훈했던 인심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소설 속에서 물색 모르는 ''는 점순이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이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닭에게' 고추장을 먹여서라도 쌈닭처럼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소설 속의 문장 '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다.'에서 '닭에게'는 물론 [달게게]라고 읽어야 합니다.

<참고 :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168180&pageIndex=1

 

'닭에게''닭한테'로 바꾼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표준발음법에는 '겹받침 , , 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 [, , ]으로 발음한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흙과'[흑꽈], '읊고'[읍꼬], 이런 식이죠.

이 규정은 우리말의 특성상 겹받침을 포함하여 한꺼번에 세개의 자음을 발음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때, Marx'맑스'로 표기하였다가, '마르크스'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온라인 가나다'라는 코너에서는, '한테'는 자음 으로 시작하니, [다칸테]로 읽어야 한다고 답변을 달아 놓았습니다.

사실 그 코너의 담당자도 많이 헷가린 모양입니다.

2005년과 2011년의 답변에는 [달칸테]가 맞다고 했다가, 2013년 이후에는 [다칸테]가 맞다고 말을 바꿉니다.

  <참고 : http://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60&qna_seq=63604&pageIndex=1>


자음에서 축약은 과 결합할 때 나타납니다. '놓고[노코]', '좋던[조턴]', '쌓지[싸치]'처럼 말입니다.

표준발음법에 있는 '넓히다'[널피다]로 읽는 규정도 이런 근거로 정해 놓은 것이겠죠.

표준발음법의 해설 부분에는 이와 같이 축약되는 것은, 한자어, 합성어, 파생어의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부언해 놓았습니다.

내 국어 실력이 얕아서, 그렇다는 근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닭이 운다'에서 '닭이'[달기]로 읽지 않고 [다기]로 잘못 읽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발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그 발음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더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닭한테'는 [달칸테]로 읽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덧붙이는 말.

김유정 소설 속에 나오는 동백꽃은 빨갛지 않고 노란색입니다.

그 꽃은 생강나무의 꽃이라고 하는데, 강원도에서는 동백이라고 부른다네요.

바야흐로 점순이와 의 사랑은 노란 동백꽃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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