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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 꼬투리

운파허터헤이


송파구에 성내천이라는 개울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발원하여 올림픽공원과 아산병원 옆을 지나 한강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예전에는 물이 흘렀겠지만 언제부터인가 건천이 되어 썩은 냄새만 진동하는 천덕꾸러기로 내려앉았었습니다. 게다가 88올림픽을 치르느라 정비를 한다고 시멘트로 잔뜩 발라 놓아서, 더욱 보기 흉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힘은 참 위대합니다.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것만 같았던 하천을 다시 살려낸 것입니다. 물줄기를 정비하고 시멘트도 걷어내고 풀과 나무도 심었습니다. 사실 물은 인공적으로 흘려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강 물을 끌어오고 지하수를 퍼올려 다시 흘려 보내는 것이라니까요. 하지만 주변 경관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하천 맨위쪽에 있는 인공 폭포만 없다면, 정말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잉어가 떼로 몰려 다니고, 오리와 백로, 해오라기도 날아와 사람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쓴 분들의 손길이 새삼 세심하게 느껴집니다.


여러해 전에 '까탈스러운' 주민 한 명이 송파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까다롭다'라는 말보다는, 비표준어이지만 '까탈스럽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때가 있습니다.)

성내천 여기저기에 세워진 '송파워터웨이'라는 커다란 철제 간판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아기자기한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뜻도 잘못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민원 제목 : 송파구에 운하가 생겼습니까?

 

쾌적한 도시 송파의 주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 사람입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주민을 위해 신경써 주시는 구청 공무원들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을 수 있겠죠?

주민의 안식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성내천에 관한 것입니다. 몇년간 성내천이 변해가는 모습을 눈여겨 보고 즐거워 하며, 이 성내천 산책로도 적당한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정말 이름이 생겼더군요. 성내천 맨위 처음 물길 시작하는 곳 작은 쉼터 길가에, 이렇게 그것도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더군요. '송파워터웨이'~

그런데 '워터웨이(Waterway)'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수로' 또는 '운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대운하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아마 작명에 착오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정확한 뜻도 생각하지 않고 굳이 영어식 이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이 항상 부를 이름이니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싸한 이름이 생각나면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그에 대한 담당자의 답변입니다.


귀하께서 말씀하신 송파워터웨이는 다른구와 달리 우리구만이 갖는 지역특성상, 외곽을 중심으로 성내천, 한강, 탄천, 장지천등으로 연결되는 동서남북 사면에 27km의 워터웨이를 만들고 문화시설을 설치해서 각종 공연, 행사등 주민들이 함께 즐길수 있는 휴식, 문화공간으로 가꾸어 감을 주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이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시작한 연애 편지는 너덧 번 더 이어졌습니다. 나의 사랑 고백에 대해, 담당자는, "~이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앞으로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바로바로처리반신고접수의 답변내용을 참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무엇인가 거꾸로 된 듯한 이 느낌을 '운파허터헤이'라고 표현하며 가끔 소심하게 반항을 해보곤 하였습니다.

'송파워터웨이'를 거꾸로 보니 그렇게 읽히더라구요. 


그 간판을 언제 걷어냈는지 이젠 눈에 뜨이지 않으니, 씁쓸한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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