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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상상

들어가는 말

0. 기억을 상상하며

 

무지개가 땅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그것이 제 아무리 아름답게 하늘을 수 놓고 있어도 이미 우리를 설레게 할 수 없다.

가지 않은 길을 이제라도 다시 갈 수가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꿈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동경하는 인생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제 한번쯤은 내가 꾸었던 꿈과 지나온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볼 만한 나이도 되었다 싶다.

생각날 때마다 적어 두었던 메모에는 어수룩하고 단순하게 살아온 여정이 있다.

그것을 통해 지난 시간들을 되짚다 보면, 내 인생의 2막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 기대도 해 본다.

 

오늘 비로소 펜을 들어, 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그 여인은 예전에 내가 꽤나 좋아하였던 사람이어야 하며, 미소를 띠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즐겼던 것으로 기억되어야 하며, 지금은 만나는 것이 지난할 정도로 먼 곳에 있어야 한다. 그게 좋겠다.

고민 끝에 그 여인을 미국의 어느 지역, 서울과 위도가 비슷한 곳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워싱턴 근처쯤?

그래야 날씨도 환경도 비슷할 터이니,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가 수월할 것 같다.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라야 그럴싸하겠지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요즘엔 인기가 없는 옛날 방식이기도 하고 오가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니, 전자메일이 적당하다.

형식은 그러하지만 내용은 아날로그의 정서.

아주 오랜만에 만나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옛 연인처럼 대화를 나눈다.

지나가버린 사랑을 무심한 듯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 삶을 이야기한다. - 무술(戊戌)